[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2023-06-23 08:59:38
이강운 - holoce@hecri.re.kr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https://cdn.imweb.me/upload/S20221123ef69dd284740f/5fcf2da5f546f.png)
▲ 등검은말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갑자기 발끝이 찌릿했다. 깜짝 놀라 발을 들어보니 집안에 들어온 말벌이 내 발에 밟히자 발가락을 쐈다. 얼굴도 아니고 발가락인 데다 벌에 쏘이는 일은 매년 반복되는 일상사라 무심히 된장을 바르고 일어서려는데 머리가 핑 돌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숨쉬기가 어렵고 토할 것 같더니 가려워지면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았다. 말로만 듣던 치명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내게 왔다. 자주 쏘이다 보니 말벌의 독에 방어하는 생체반응이 과잉으로 작용해 나를 방어해 준 것이 아니라 실신하게 만든 것.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혈압이 80까지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119에 연락을 하고 하염없이 앰뷸런스를 기다렸다.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20분, 싣고 병원까지 가는데 20분.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내 곁에서 아내는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온 힘을 다했다.
내가 멀미에 토까지 하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아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다. 119가 늦게 출동하고 늦게 후송한 것이 아니라 연구소가 산속 깊숙이 있으니 할 수 없는 일!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하여 주사를 맞고 정신을 좀 차리자 아내는 울면서 “이제 그만하자” 한다. 누가 산속에 살라 부탁한 적도 없고 강요한 적도 없다. 멸종위기종 살려보겠다고, 환경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온 내 잘못. 자칫 죽을 뻔했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https://cdn.imweb.me/upload/S20221123ef69dd284740f/a7bc5ae9700c9.png)
▲ 앰뷸런스에 실린 필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산중 생활은 맑은 공기에 깨끗한 물, 그리고 꽃 같은 마냥 즐거운 자연생활이 아니라 목숨 걸고 살아내야 하는 일이다. 10여 년 전 아들을 유행성출혈열로 잃을 뻔했고 난방비 아낀다고 밤나무 땔감으로 불을 때다가 아내와 딸도 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었다. 이제 남편까지 쇼크사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으니 빨리 탈출하고 싶겠지!
30년 산속 생활을 정리하고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그나마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으니 도시로 이사하자며 아내에게 설득을 당하면서도 정신이 좀 들자 붉은점모시나비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번식을 마치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들의 시신도 거두어 줘야 하고 붉은점모시나비의 자손인 알도 살뜰히 챙겨야 할 때인데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으니.
1997년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연구소를 차리려 할 때 주변 지인들은 미친 짓이라며 걱정을 했다. ‘자연이나 생태’ 같은 단어들이 아주 생소했고 생물을 소재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던 시대에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특별한 일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고생을 했다.
그러나 2005년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나면서부터 차고 넘치는 큰 복을 받았다. 거의 20여 년 동안 고귀한 붉은점모시나비를 연구하면서 얼마나 신비롭고 행복했는지! 붉은점모시나비는 내 은인이다.
![[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https://cdn.imweb.me/upload/S20221123ef69dd284740f/46f3aa19d29a5.png)
▲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속살이 살짝 비치는 모시 같은 반투명한 날개에 태양처럼 붉은 원형 무늬가 화려한 붉은점모시나비!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나비’라는 이름이 나풀나풀 날아가는 모습을 말함인데 바람에 휘날리듯 나풀나풀 날아가는 붉은점모시나비야말로 가장 ‘나비’다운 나비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절멸 위협 종이며 대한민국에서도 멸종 위기종Ⅰ급으로 지정된 귀한 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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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으로 읽는 경제] 멸종위기 '붉은점모시나비'가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
2023-06-23 08: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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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운 - holoce@hecri.re.kr
▲ 등검은말벌.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갑자기 발끝이 찌릿했다. 깜짝 놀라 발을 들어보니 집안에 들어온 말벌이 내 발에 밟히자 발가락을 쐈다. 얼굴도 아니고 발가락인 데다 벌에 쏘이는 일은 매년 반복되는 일상사라 무심히 된장을 바르고 일어서려는데 머리가 핑 돌고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푹 고꾸라졌다.
숨쉬기가 어렵고 토할 것 같더니 가려워지면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았다. 말로만 듣던 치명적인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내게 왔다. 자주 쏘이다 보니 말벌의 독에 방어하는 생체반응이 과잉으로 작용해 나를 방어해 준 것이 아니라 실신하게 만든 것.
땀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혈압이 80까지 떨어져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119에 연락을 하고 하염없이 앰뷸런스를 기다렸다. 구급차를 기다리는데 20분, 싣고 병원까지 가는데 20분.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내 곁에서 아내는 계속 경련을 일으키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온 힘을 다했다.
내가 멀미에 토까지 하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아내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한다. 119가 늦게 출동하고 늦게 후송한 것이 아니라 연구소가 산속 깊숙이 있으니 할 수 없는 일!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하여 주사를 맞고 정신을 좀 차리자 아내는 울면서 “이제 그만하자” 한다. 누가 산속에 살라 부탁한 적도 없고 강요한 적도 없다. 멸종위기종 살려보겠다고, 환경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 보겠다고 산속으로 들어온 내 잘못. 자칫 죽을 뻔했다.
▲ 앰뷸런스에 실린 필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산중 생활은 맑은 공기에 깨끗한 물, 그리고 꽃 같은 마냥 즐거운 자연생활이 아니라 목숨 걸고 살아내야 하는 일이다. 10여 년 전 아들을 유행성출혈열로 잃을 뻔했고 난방비 아낀다고 밤나무 땔감으로 불을 때다가 아내와 딸도 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맸었다. 이제 남편까지 쇼크사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됐으니 빨리 탈출하고 싶겠지!
30년 산속 생활을 정리하고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그나마 비상사태에 대처할 수 있으니 도시로 이사하자며 아내에게 설득을 당하면서도 정신이 좀 들자 붉은점모시나비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번식을 마치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들의 시신도 거두어 줘야 하고 붉은점모시나비의 자손인 알도 살뜰히 챙겨야 할 때인데 이렇게 병원에 누워있으니.
1997년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 연구소를 차리려 할 때 주변 지인들은 미친 짓이라며 걱정을 했다. ‘자연이나 생태’ 같은 단어들이 아주 생소했고 생물을 소재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던 시대에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특별한 일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했고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고생을 했다.
그러나 2005년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나면서부터 차고 넘치는 큰 복을 받았다. 거의 20여 년 동안 고귀한 붉은점모시나비를 연구하면서 얼마나 신비롭고 행복했는지! 붉은점모시나비는 내 은인이다.
▲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속살이 살짝 비치는 모시 같은 반투명한 날개에 태양처럼 붉은 원형 무늬가 화려한 붉은점모시나비!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나비’라는 이름이 나풀나풀 날아가는 모습을 말함인데 바람에 휘날리듯 나풀나풀 날아가는 붉은점모시나비야말로 가장 ‘나비’다운 나비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절멸 위협 종이며 대한민국에서도 멸종 위기종Ⅰ급으로 지정된 귀한 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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